"기술 왜 배워요? 유튜버가 낫죠"…무너지는 '메이드인코리아'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3-05-13 17:52   수정 2023-05-13 19:03


부산의 한 금형회사 대표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금형 배울 사람 없냐고 묻는 게 습관이 됐다. 1년 내내 구인 공고를 내도 지원자를 보기 힘든 데다 어쩌다 면접이 성사돼도 현장을 살펴본 뒤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발을 돌리기 일쑤여서다. 대형 고객사를 여럿 두고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년을 훌쩍 넘긴 숙련공들이 체력 저하를 호소해 비상이다. 도리어 고객사가 이 회사의 기술 맥이 끊길 것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숙련공 육성? 꿈도 못 꿔"
대한민국 기술 인재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13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지역별로 개최된 지방기능경기대회 참가자는 4729명에 그쳤다. 10년 전과 비교해 인원이 절반가량 줄었다.

1966년 처음 시행된 지방기능경기대회는 40년 넘게 매년 참가자 수가 증가했다. 2010년엔 9878명으로 정점을 찍으며 '메이드인코리아'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가자 수가 줄고 있다. 기계와 금속분과 직종에서의 감소세는 심각하다. 응시자가 없어 경기를 열지 못하거나 대회 참가만으로 금·은·동메달을 받는 직종도 적지 않다.

3D 업종으로 인식되는 금형은 문제가 심각하다. 올해 지방기능경기대회 세종과 제주 지역에선 기계분과 금형과 컴퓨터 수치제어(CNC)선반, CNC밀링 응시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인천과 울산에서도 3개 직종 응시자는 각각 15명과 12명에 불과했다. 금형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경기 남부의 한 금형업체 대표는 "금형은 한 명의 숙련공이 열 사람 몫을 하기 때문에 도제식 교육이 필수지만 사람이 없어 숙련공 육성은 꿈도 못꾼다"고 고개를 저었다.

금속분과의 용접·배관·주조도 마찬가지다. 광주 지역은 3개 직종 응시자가 아예 없었다. 주조의 경우 지난해 17개 시·도 중 11곳에서 출전 선수가 없어 경기를 열지 못했다. 기능경기대회 응시자가 감소한 데는 참가 인원의 80%를 차지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참여 저조가 결정적이다. 특성화고는 매년 미달이다. 지난해 서울 특성화고 68개교는 정원의 78.4%만 신입생을 채웠다. 인천 충원율은 74.3%에 그쳤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사는 유튜버를 하겠다는 학생들과 상담을 하느라 진땀을 빼는 날이 많아졌다. 과거엔 명장이 되겠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3년여 전부턴 분위기가 달라졌다. "힘들게 기술을 왜 배워요? 유튜버나 라방(라이브 방송)을 하는 게 훨씬 낫죠"라고 말하는 제자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숨을 쉬었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와 숙련공에 대한 관심 저조 등으로 지방기능경기대회 참가 선수가 줄고 있는 현실은 직업계고의 신입생이 매년 감소하는 것과 연관이 깊다. 경남의 한 특성화고 교사는 "1970년대만 해도 기능올림픽과 숙련공 위상은 올림픽 국가대표급이었다"며 "입상자들은 서울 도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대통령이 직접 훈장을 걸어줬지만 지금은 혜택이 크게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순위도 예전같지 않다. 우리나라는 1977년 23회 대회를 시작으로 19차례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숙련공 육성을 가장 잘하는 국가였다. 하지만 2015년 브라질 대회 우승 이후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2019년 러시아 대회에선 3위에 그쳐 1971년(4위) 이후 역대 최저 성적을 냈다. 지난해도 2위에 머물렀다. '메이드인코리아'의 영광이 사라질 것이라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숙련공 이탈 심각한 조선업
조선업에선 숙련공을 구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14년 20만명이었던 조선업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9만5030명으로 줄었다. 남은 숙련공의 은퇴 시기마저 다가오고 있다. 산업안전인적자원개발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조선 용접 부문의 경우 정년을 앞둔 50대가 대부분이다. 전체 인력 중 38%가 40대, 30.2%가 50대다.

용접공들이 떠나는 이유는 낮은 임금, 고용 불안 등 복합적이다. 경기 평택의 삼성 반도체 팹 건설 현장에 출근하는 20년 차 베테랑 용접공 A씨는 이곳에 오기 전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일했다. 그는 최근 조선소 반장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전화를 수차례 받았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다. A씨는 "울산보다 평택에서 버는 게 월 200만원 가량 더 많다"며 "팹 건설 붐이 불고 있어 평택 일감이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도장은 파도 및 바다 염분 때문에 안전 문제와 직결돼 숙련도가 중요하지만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선박 도장 인력 2786명 중 20대는 132명으로 전체의 4.7%, 30대는 428명으로 15.4%에 그쳤다. 40대에서 60대 이상 근로자들은 2226명으로 80%에 달했다. 조선·해양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조선해양 산업 인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 인력이 채워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구직자의 기피 현상(31.5%)'이다. 정부는 조선업계 외국인 근로자 총원을 늘려 숙련공 이탈에 대비한다는 구상이지만 상당수가 단순 노무직이어서 숙련공 몫을 할지는 미지수다.
"외국인 근로자 정책, 고급 인력 유치로 전환해야"
건설업은 어떨까.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2024년까지 연평균 내국인 근로자가 약 16만9000명 부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족 비율이 심각한 직종으로 형틀목공, 석공, 건축배관, 도장, 조적, 비계 등이 꼽혔다. 모두 숙련 기술을 요하는 분야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해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반장, 기능공 등 한국인 숙련 인력의 수급 상황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60%였다. 사업주 300명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부족' 응답이 58%로 절반을 넘었다.

한국은 단순 인력에 대해선 체계적인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숙련공에 대해선 정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늘 제기된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호봉제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생산성에 따라 보상이 책정되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며 "외국인 근로자 수급 정책도 기피 업종 공급에서 고급 인력 유치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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